(역량 개념의 출현) 역량 개념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맥클리랜드(David McClleland) 교수입니다. 그는 1973년 미국 심리학지(American Psychologist)에 “Testing for competence rather than for Intelligence”라는 논문을 게재했고 이 논문을 통해 역량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소개했습니다. 논문의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개인이 창출하는 성과를 예측하기 위해 ‘지능’(Intelligence)이 아닌 ‘역량’(Competence)을 검사하라고 하는 것이 논문의 주제입니다. 지능의 성과 예측 기능에 대해 이미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개념이 없었던 당시 꽤 의미 있는 대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현실에서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후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역량 개념을 도입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는 2000년 대 초반 ‘Competence at work’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오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역량이라는 개념이 과연 우리나라 조직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거의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본류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KPI가 성과를 평가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도입했던 것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기존의 고과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도구로 기대하고 역량개념을 도입 했던 것 같습니다. 역량을 현실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량모델링을 해야 하고, 역량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역량에 대한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간과한 것이 역량 개념이 정착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량이라는 개념은 중요하고 현실에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역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역량 개념의 정확한 이해) 역량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적특성입니다. 이런 내적특성은 외부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특정한 행동을 지속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내적특성이라는 역량에 의해 나타난 특정한 행동은 창출하는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역량의 정의에 따라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역량이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에 행동을 통해 역량을 추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특정 역량은 특정 행동을 설명하는 내용 즉, 행동정보로 기술됩니다. 즉, 역량은 행동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을 ‘역량측정’이라고 합니다. 둘째, 행동을 곧바로 역량으로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이 나타낸 행동 중 역량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행동이 있고 역량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도 있습니다. 특정 행동을 역량이라 볼 수 있는지 여부는 그 행동이 나타난 상황과 그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맥락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역량은 그 자체로서 좋다, 나쁘다라고 하는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을 ‘역량모델’이라고 합니다. 역량모델은 고성과를 창출한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역량 즉 행동정보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량모델링을 위해서는 고성과를 창출한 사람들의 역량을 직접 측정해야 합니다.

(역량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타난 관행들) 역량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롯된 역량 활용 관행이 우리나라 조직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첫째, 고객지향성, 진취성 등을 역량이라고 이해하고 역량의 수준을 측정하려고 합니다. 역량 개념을 소개한 맥클리랜드 교수는 특정 행동 하나 하나가 역량이라고 규정합니다. 즉, 고객지향성으로 그룹핑 할 수 있는 각각의 행동정보가 역량이지 고객지향성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역량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량은 rating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coding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둘째,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만으로 역량을 측정합니다. 역량을 행동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나타내는 모든 행동을 역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특정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고 이것을 역량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사권을 가진 상급자 앞에서 나타내는 행동 중 상당수의 행동은 역량이라고 볼 수 없고, 평가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보이는 행동 또한 역량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셋째, 고성과자들의 역량측정을 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 협의를 통해 역량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또는 시중에서 역량모델이라고 하는 것을 수집하고 수정 보완하여 역량모델링 합니다. 역량측정이라는 기본 개념을 도외시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 역량 개념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 맥클리랜드 교수는 그가 사망하기 1년 전 1997년에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가 접한 사회에서도 역량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활용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지능 대신 역량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역량이라는 옷을 입은 지능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맥락을 고려한 행동으로 역량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BEI(Behavioral Event Interview: 행동사건면접)를 제시했습니다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투입으로 이런 방법이 현실에서 확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학자로서 또 실행가로서 보이는 진지한 모습이 무척 감동스럽지만, 역량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알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화가 악화로 인해 쫓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량 개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해서 벌어지고 있는 관행들이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식노동자의 성과관리를 위해 역량이라는 개념을 활용해야 합니다. KSA(지식, 기술, 태도)를 역량이라고 하면서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 근거 없는 평가 도구로 전락되도록 놔 두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관리라면 그렇게 해도 별 문제 되지 않겠지만, 지식노동자를 대상으로 성과관리를 그렇게 하게 되면 그들은 지식노동자임을 포기하고 육체노동자가 되기로 마음먹게 될 것입니다. 역량은 OSC(Objectives and Self-Control)와 BSC(Balanced Scorecard)와 함께 지식노동자의 성과관리를 위해 올바르게 활용되어야 합니다. 성과관리의 성공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