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국내 컨설팅회사에 재직하던 시절 고객사 H로부터 흥미롭고 새로운 제안이 들어 왔었습니다. 이 때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로 인해 나라의 경제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과연 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더불어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있을 당시였습니다. 즉, 회사들마다 구조조정과 더불어 연수만 차면 급여가 자동으로 오르는 인사체계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속에서 평가에 의해 급여를 차등적용하는 인사체계의 도입이 확산되었습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는 근무연수에 의해 신분이 바뀌는 직급체계를 유지한 체, 개인을 평가하여 등급화 시키고 개인 간 경쟁을 시켜 고성과자와 저성과자를 구분하면 회사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적 접근을 시도한 때였습니다. 

고객사 H는 당시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직무기반의 인사관리(Job-based HR System)을 도입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4개월의 기간을 주면서 국내에는 직무기반의 인사관리를 실행하고 있는 기업이 거의 없으므로 미국의 직무기반 인사관리체계를 연구하여 당사에 맞는 인사제도를 설계해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신문, 인사관리 잡지, 기사에 나온 미국사례, 외국계 회사 벤치마킹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Job-based HR System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여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연차에 의해 직급상승이 이루어지고 승진은 신분상승을 의미하던 당시 인사체계에서, 직무평가에 의해 직급이 결정되고 직무의 변동에 따라 직급이 바뀌고 직급은 직무등급으로부터 유래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게 그 때였습니다.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에 가장 근접한 인사체계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 수행 후 우리나라에 향후 이 제도가 확산될 것이라는 생각을 당시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사 H는 3년 동안 제도를 운영하였으나 운영상 나타난 각종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하여 결국 과거 인사체계로 회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최근 직무기반의 인사관리체계(Job-based HR System)가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25년 동안 우리나라는 왜 직무기반의 인사관리체계로 가지 못했고 어떠한 인사관리의 변화들이 있었으며 지금에 와서 다시 직무기반의 인사관리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일까요?

이번 주간리워커 원고에서는 25년 동안에 우리나라에 큰 변화를 가져왔었던 인사관리시스템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인사관리체계가 들어 왔었고, 그 제도들이 정착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직무기반 인사관리(Job-based HR System)체계로 가야 하는 지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